PHILIP K. CHOI 최경식
(1902-1932)
유학 기간: 1929-1932
전공: 사회학
학위 논문명: The Urban Problem of Korea under Japanese Régime (M.A. 1928, Northwestern University)
주요 경력
- 시카고대학교 사회학 박사과정 (1929-1932)
- 노스웨스턴대학교 사회학 석사 (1929)
- 시카고대학교 국제학생회 한국대표 (1929-1930)
- 북미대한인유학생총회 서기 (1929-1931)
- 『우라키』 편집위원
- 시카고 한인유학생회 회원
- 시카고 빌링스 병원에서 별세 (1932.3.1.)
최경식은 1902년 평안남도 평원에서 태어났다. 1924년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졸업하고 1926년 도미하였다. 연희전문학교 재학 중 그는 조선학생회 중앙집행위원을 맡았다. 1919년 3·1운동 이후 학생이 중심이 되는 조직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어갔는데 1922년 시작된 조선학생회는 조선 학생의 단결을 도모하는 계몽 단체였다.
최경식은 노스웨스턴대학교에서 사회학 석사 학위를 취득 (1929) 하였고, 석사 학위 논문은 “The Urban Problem of Korea under Japanese Régime (일제강점기 한국의 도시 문제)” 이다. 이후 박사 학위 취득을 위해 시카고대학교 사회학과에 진학하였다. 그는 시카고대학교 국제학생회의 한국대표, 북미대한인유학생총회 서기, 우라키 편집위원, 시카고 한인유학생회 회원 등 다양한 활동을 하였다. 그가 시카고대학교 국제학생회의 한국대표로 재임했던 1929년 12월에는 시카고대학교 아이다홀 (Ida Noyes Hall) 에서 한국인의 밤 (Korean Night) 행사를 성공적으로 주최하기도 하였다. 또한 우라키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며 우라키에 학술논문을 게재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전도유망한 유학생이던 최경식은 박사과정 중인 1932년, 향년 30세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유명을 달리하게 된다. 최경식의 장례식은 시카고 한인 이민 사회 최초의 장례식이었기 때문에 많은 시카고 한인들이 모여 그의 마지막을 애도하였다. 그의 장례식은 1932년 3월 3일 시카고대학교의 본드 예배당(Bond Chapel)에서 갈홍기 목사의 집도와 시카고대학교 교회 목사인 찰스 휘트니 (Charles Whitney) 박사의 설교로 거행되었다. 갈홍기 목사는 이날의 장례식은 파벌을 초월하여 모든 한인들이 힘을 모아 객지에서 요절한 젊은이의 영혼을 위로한 날이자 동족애를 드러내는 감격스러운 사건이었다고 회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