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WANG SUP YUM 염광섭

(1895-1981)

졸업연도: 신학 석사 (1923), 심리학 박사 (1930)

전공: 신학, 철학, 심리학

학위 논문명: Baptism in the Letters of Paul (M.A. 1923)

An Experimental Test of the Law of Assimilation (Ph.D. 1930)

주요 경력

  • 메리디안대학교 (1914-?)
  • 애스버리대학교 문학사 (1919)
  • 에모리대학교 신학사 (1922)
  • 시카고대학교 신학 석사 (1923)
  • 북미대한인유학생총회 회장 (1923-1925)
  • 시카고대학교 한인학생회 회원 (1925-1926)
  • 시카고대학교 심리학 박사 (1930)
  • 우라키 편집위원 (1931)
  • 시카고대학교 심리학과 도서관장 (1922-1943)
  • 최초 시카고대학교 한국인 교수진 (정신의학 연구원 1943-1945)
  • 한국 교육부 컨설턴트 (1946-1949)
  •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및 학과장 (1947-1949)
  • 숭실여자대학교 강의 (1947-1949)

염광섭은 1895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파주이며 삼대 (Three Generations), 표본실의 청개구리 (Tree Frog in the Specimen Room) 로 유명한 소설가 염상섭의 육촌형이기도 하다. 보성중학교와 정리사 (수학 전문 사립학교)를 거쳐 1914년 감리교 선교사의 도움으로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초기 도미 유학생들은 미국선교회의 도움으로 유학을 오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대부분의 유학생의 전공은 신학과 의학에 집중되어 있었다. 염광섭 또한 애스버리대학교에서 문학사 학위 (1919), 에모리대학교에서 신학사 (1922) 를 취득하였다. 염광섭은 학사학위 취득 후 1922년 처음 시카고대학교에 발을 들였다. 염광섭은 시카고대학교에서 신학 석사 학위 (1923) 를 취득한 후 전공을 변경하여 1930년에 심리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염광섭은 시카고대학교에서 수학하는 동안 학업활동 외에도 북미대한인유학생총회 회장 (1923-1925), 시카고대학교 한인학생회 회원, 시카고 국제학생교류위원회 한국학생 대표로 활동하면서 유학생 간의 정보 교류와 친목 도모를 위해 힘썼다. 북미대한인유학생총회는 매년 6월 하기방학을 이용해 정기 연회를 개최하고 각종 시국과 시사문제를 발표하고 토론하였다. 1922년부터 1941년까지 영문 월간잡지인 한인학생회보 (The Korean Student Bulletin) 를 발간하였고, 자체 기관지로 1925년부터 1936년까지 국문 잡지 우라키 (The Rocky) 를 발간하였다. 1923년 제1회 총회가 시카고대학교에서 개최되었는데 시카고대학교 버튼 (Ernest DeWitt Burton) 총장, 시카고대학교 교수 맥클린탁 (William Darnall MacClintock) 교수, 서재필 박사 등 20여명의 내빈과 미국 각지에서 모인 유학생, 시카고 거류 동포가 모여 성황을 이루었다. 제1회 총회에서 염광섭은 북미대한인유학생총회 회장으로 당선되어 3년동안 북미대한인유학생총회를 이끌었다. 또한 그는 우라키의 편집위원이자 기고가로 활발히 활동했다.

염광섭은 시카고 한인감리교회의 창립 멤버이기도 하다. 1922년 기도회를 시작으로 1923년 시카고 한인감리교회가 설립되었다. 이때 염광섭은 장세운과 함께 전도사로 피선되었고 김창준과 조희염이 목사직을 맡았다. 시카고 안팎으로 활발한 전도 활동을 벌인 그는 1930년 교회 이사로 선임되어 시카고한인교회 예배당을 마련하는 데 앞장섰다.

염광섭은 시카고대학교에서 심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시카고대학교 심리학과 도서관장으로 근무하다 1943년 시카고대학교의 최초 한국인 교수진이 되어 정신의학과 연구원으로 근무하였다. 1947년부터 1949년에는 미국 국무성의 알선으로 미군정 고문이 되어 한국에 귀국하였다. 동아일보시카고대학교 매거진 (University of Chicago Magazine) 에서 그의 금의환국 소식을 전하기도 하였다. 이후 그는 교육부 고문, 서울대학교 대학원 심리학과 교수가 되어 ‘심리검사를 위한 기초 수학’라는 영어강좌를 강의하였다.

그 후 염광섭은 아내 루이스 글소니클 (Louise Grossnickle, 임영은), 아들 (Kwang Sup Yum II) 과 함께 도미하여, 1981년 86세의 나이로 시카고 인근에서 별세하였다.

Successful Economic Development of the Republic of China in Taiwan

염광섭 (K.S. Yum)

중화민국(대만)의 성공적인 경제 성장

뉴욕: 밴티지 프레스, 1968

HC430.5.Y92 G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