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RRY WHANG 황창하
졸업연도: 1926
전공: 경영학
주요 경력
- 하이드파크 고등학교 수학
- 북미대한인유학생총회 서기 및 영업부장 (1923-1924, 1925-1927)
- 시카고 한인유학생회 회장 (1924)
- 『한인학생회보』 서기, 편집위원 (?-1929)
- 『우라키』 편집위원 (1924-1925)
- 시카고대학교 경영학 학사 (1926)
- 컬럼비아대학교 교육학 석사 (1929)
- 체이스 은행 뉴욕지점 근무 (1929-1932)
- 미공군부대 Selfridge Air National Guard Base 극동 지역 및 일본어 강사 (1943)
황창하는 평양 출신으로 1920년 프랑스를 거쳐 미국에서 유학 생활을 시작하였다. 하이드파크 고등학교에서 수학 후 시카고대학교에서 경영학 학사 학위 (1926) 를 취득하였다. 1927년 시카고대학교 졸업앨범을 보면 황창하는 재학기간 동안 시카고대학교 국제학생회 (International Student Association), 시카고대학교 한인학생회 (Korean Club of the U of C), 외국인 학생회 (Foreign Student Council), YMCA, 북미대한유학생총회 (Korean Student Federation of North America) 등 다양한 학생활동에 참여했음을 알 수 있다. 황창하는 시카고대학교 한인학생회의 창립 멤버였다. 시카고대학교 한인학생회는 1924년 창설되었고 회원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모임을 가지며 전공 관련 논문을 공부하거나, 강연이나 친목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황창하는 한인학생회보 (Korean Student Bulletin), 우라키 (The Rocky) 의 주필을 맡기도 하였다.
학사 학위 취득 이후 뉴욕으로 건너간 황창하는 컬럼비아대학교에서 교육학 석사 학위(1929)를 취득한 후 체이스 은행 뉴욕지점에서 근무하였다. 이 시기 룸메이트였던 강용흘 재미교포 소설가의 소설 초당 (The Grass Roof) 의 비평글을 한인학생회보에 게재하기도 하였다. 1930년 창립된 뉴욕한인공동회의 창립 멤버이자 회계부장이었던 그는 회원들과 “일본의 만주침략에 대한 대한인의 성명서 (The Korean Manifesto against the Japanese Invasion in Manchuria)” 를 작성하여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 주요 기관에 영문 책자를 발간 배포하였다. 또한 1931년 뉴욕의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하는 재미조선문학회(Korean Culture Society)를 창립하고 이사직을 맡았으며 외교활동 및 집회를 통한 선언문 발표, 독립군 지원 등 다양한 애국활동을 펼쳤다.
1933년 한국에 일시 귀국하였던 그는 1934년 미국으로 돌아와 이헬렌 (Helen Lee) 과 결혼하였고 디트로이트에서 원예 상점을 운영하였다. 1950년 시카고대학교 매거진에 황창하와 그의 사업 소식을 전하는 인터뷰 기사가 게재되었다. 1950년 초대 주미대사였던 장면 (John Myeon Jang) 과 함께 대한민국 정부 외교사절로 하와이를 함께 순방하기도 하였다. 디트로이트에서 오랫동안 사업을 하며 터를 닦은 그는 1965년 디트로이트 한인회 (Korean American Community of Metro Detroit) 을 창립하여 초대회장 (1965-1967) 을 역임하였다.